형광 물질을 붙이지 않고도 분자 하나하나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 기술이 개발됐다.



왼쪽부터 심상희, 박성남, 우한영 고려대 교수, 오수민, 엄윤지, 김하연. 한국연구재단 제공
왼쪽부터 심상희, 박성남, 우한영 고려대 화학과 교수, 오수민 석박사통합과정생, 엄윤지 연구원, 김하연 석박사통합과정생. 한국연구재단 제공


한국연구재단은 심상희·우한영·박성남 고려대 화학과 교수 공동연구팀이 형광 검출에 의존하지 않고 단일 분자를 직접 관찰하는 라만 현미경 기술을 개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1월 29일 게재됐다.


현미경으로 세포 안 특정 분자를 관찰하려면 보통 형광 물질을 표지로 붙여 빛나게 만든다. 형광 신호는 폭이 넓어 한 번에 3~4종류의 분자밖에 구분하지 못한다. 질병의 원인을 밝히거나 신약을 개발하려면 세포 안 수십 종의 분자를 동시에 식별해야 하는데 형광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라만 현미경이다. 라만 현미경은 분자에 레이저를 쏠 때 분자 고유의 진동에 따라 빛이 약간 다른 파장으로 산란되는 현상인 '라만 신호'를 이용해 분자를 관찰하는 장치다. 형광 물질을 붙이지 않아도 분자 자체의 진동만으로 종류를 알아낼 수 있다. 


라만 신호는 형광에 비해 주파수 범위가 100배 이상 좁고 날카롭다. 형광은 신호가 넓게 퍼져 여러 분자의 신호끼리 겹치기 쉬운 반면 라만 신호는 분자마다 뚜렷이 구분돼 훨씬 많은 종류를 동시에 식별할 수 있다. 문제는 신호가 너무 약해 분자 하나를 감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두 가지 전략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먼저 레이저 두 대의 파장을 각각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분자가 빛을 흡수하는 조건에 정확히 맞춰 라만 신호를 200배 이상 증폭시켰다. 동시에 형광은 거의 내지 않으면서 라만 신호를 강하게 내는 새로운 분자 탐침도 개발해 라만 신호를 방해하는 형광 잡음을 근본적으로 차단했다.




형광 없이 단일 분자를 보는 라만 현미경(ER-SRS) 기술의 개요. (가) 형광 잡음을 억제하도록 새로 설계한 분자 탐침 두 종과 파장 조절이 가능한 이중 레이저 시스템. (나) 일반 현미경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두 종류의 입자가 라만 신호로 관찰하면 명확히 구분된다. (다) 분자 하나의 라만 신호를 검출한 결과. 신호가 한 번에 사라지는 현상을 통해 관찰 대상이 단 하나의 분자임을 확인했다. 심상희 고려대 교수 제공
형광 없이 단일 분자를 보는 라만 현미경(ER-SRS) 기술의 개요. (가) 형광 잡음을 억제하도록 새로 설계한 분자 탐침 두 종과 파장 조절이 가능한 이중 레이저 시스템. (나) 일반 현미경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두 종류의 입자가 라만 신호로 관찰하면 명확히 구분된다. (다) 분자 하나의 라만 신호를 검출한 결과. 신호가 한 번에 사라지는 현상을 통해 관찰 대상이 단 하나의 분자임을 확인했다. 심상희 고려대 교수 제공


연구팀은 기술로 분자 하나의 신호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파장 차이가 1나노미터(nm, 10억분의 1미터) 이하로 매우 미세한 두 종류의 분자를 동시에 구분해 관찰하는 '이중 이미징'도 구현했다.


이중 이미징은 성질이 거의 비슷한 분자들이 뒤섞여 있어도 레이저 파장을 미세하게 조절해 각각을 따로 골라 볼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구분할 수 있는 분자의 가짓수를 더 늘리면 세포 안 수십 종의 분자를 한꺼번에 식별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최근 빠르게 발전하는 '공간 오믹스' 분야와 직접 맞닿는 성과다. 공간 오믹스는 세포 안에 있는 유전자와 단백질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생체 지도를 만드는 기술이다. 같은 종류의 세포라도 분자 배치가 다르면 질병 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 정밀 진단과 신약 개발에서 핵심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심상희 교수는 "분자 진동 신호로 생체분자를 구별해 기존 형광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초고해상도 이미징의 새 지평을 열었다"며 "살아있는 세포 안에서 질병 관련 분자를 정밀 추적하는 차세대 바이오 이미징 플랫폼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doi.org/10.1038/s41467-026-69348-6


출처 : https://www.dongascience.com/news/76975